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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나눔터 내주의 모친 마리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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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928회 작성일19-11-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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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준형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 8:27).

 

이것이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낙성식에서 한 기도입니다. 그 위엄과 존엄성에 있어서나 그 거룩하심과 영원하심에 있어서나 상천하지(上天下地)의 그 누구, 그 무엇과도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그 앞에 미물(微物)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이 지은 집에 거하시겠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할 때 솔로몬은 얼마나 경탄했는지요!

 

그러나 이 보다 더 무한히 경탄스러운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피조물의 몸에 잉태되어 탄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활한 우주를 모래 한 알 속에 축소시켜 집어넣는 일과 같은 기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주님의 동정녀 탄생의 제일 큰 기적은, 동정녀에게서 아기가 잉태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무한히 크시고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심히도 작고 심히 부정한 인간의 몸속에 잉태, 탄생되었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인을 얻기 위해 온 지구를 두루 살피시던 하나님의 시선이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한 무명한 시골 처녀에게 머물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렇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입은 처녀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 또 그 처녀에게서 배운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마리아"입니다(1:27).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가리켜 "은혜를 받은 자"(1:28)라고 했고,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하기를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라고 했으며, 마리아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1:48)하고 극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대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관심을 살펴보면 그 관심이 크게 양극화되어 있는 사실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쪽에서는 마리아를 신격화시켜 그를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마리아에 대해서 거의 무관심하다시피 하고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차제에 마리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세 가지 면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성경의 마리아

. 교회사의 마리아

. 이에 따른 교훈

 

. 성경의 마리아

우리는 성경에서 마리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공부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마리아에 관한 이해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마리아를 잘 알지 못하면 우리는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그녀를 숭배하거나 그녀에게 기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먼저 구약의 두 개의 예언에 나타나 있는 성경의 마리아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물론 여기에 언급한 "여자"는 직접적으로는 하와를 가리켜 말씀한 것이지만 예언 상으로는 우리 주님을 낳을 여자를 가리켜 말씀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4:4"때가 차 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님을 낳은 그 여자가 마리아이기 때문에 창세기 3:15에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그 여자'는 바로 마리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이사야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우리는 마태복음 1:18-23의 말씀을 통해 여기에 언급된 "처녀"가 마리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에 인용한 구약의 두 말씀은 다 같이 우리 주님께서 처녀에게서 태어나 "여자의 후손"(남자의 후손이 아님)이 될 것을 말씀한 것이므로 우리 주님의 처녀 탄생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신약을 통해 성경의 마리아에 관한 것을 비교적 열 한 부분으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처녀 마리아(1:26-38)

마리아는 이때의 나이가 이십 세 전후였을 것입니다(이 때는 조혼을 하던 때이므로 마리아를 십대의 소녀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녀의 가정 형편은 물질적으로도 유복한 편이 못되었던 것 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찬송 시에 보면 "비천한 자(1:52) 또는 "주리는 자"(1:53)에 관해서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따라 결례를 행할 때에도 주님께 어린양을 드리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비둘기로 제사 드리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사는 고장도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같은 성도(聖都)가 아니고 갈릴리 나사렛과 같이 불법과 부도덕이 성행하는 곳이었고, 시대적으로도 그 때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분위기가 너무나 혼탁하고 너무나 어두워서 하나님을 마귀로, 마귀를 하나님으로, 성전을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굴혈로 착각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즉 외식과 불법과 횡포가 난무하는 시대였습니다(23). 그런 시대적 어두운 배경과 불경건한 고장, 또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나쁜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떻게 어린 소녀 마리아가 하늘의 하나님의 마음에 들만큼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의 용기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누가복음 1장을 열어 하나님의 특사인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 인사 및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수태하게 될 것에 대한 발표 또 이에 따른 마리아의 반응 등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1:26-28). 천사 가브리엘이 성전에 임해서 제사장 사가랴에게 말할 때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그저 사가랴의 이름을 불러 이야기 했지만 나사렛 촌의 처녀를 대할 때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하고 깍듯이 정중한 인사를 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가브리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우리 주님을 낳을 어머니로 선택, 임명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마리아를 천사 가브리엘이나 제사장 사가랴보다도 더 존귀케 하시고 더 높이신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신 것입니다(1:52). 이것은 상대적으로 마리아가 얼마나 자기를 낮추며 살았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비록 어린 소녀로서 가난한 환경과 불경건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아야만 했지만 그것을 탓하지 아니했습니다. 마치 그는 짠 바다 물속에 살지만 그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유유히 살아가는 신선하고도 생명력 넘치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지켰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청순한 모습입니까.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과 인사를 받은 마리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1:29).

여기서 우리는 다시 마리아의 아름다운 두 가지 덕성을 보게 되는데 그 하나는 마리아의 때묻지 않은 마음의 순박성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의 여성다운 섬세성입니다.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을 듣고 놀랬다는 것은, 마리아가 주님을 섬기고 말씀을 따라 흠이 없이 살되 그에 대한 무슨 보상이나 축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고 순전한 마음으로 했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천사의 인사가 마리아에게 거북하게 느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 마리아가 천사의 인사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했다는 것은 마리아가 섬세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그 과분한 인사에 대해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리아가 그 과분한 인사에 대해 속된 표현으로 우쭐댈 수도, 또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 말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1:30-33). 그리고 마리아는 자기에게 임할 이 엄청난 일에 대한 말씀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는 빛이 없이 그저 단순한 믿음으로 묻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1:34)하고 그 수태의 방법에 대해서만 의문을 나타냈지 사가랴처럼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1:18)하고 불신을 나타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기에 사가랴는 그 불신의 보응으로 벙어리가 되어(1:20) 천사와의 대화가 더 이상 진전이 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끝나야만 했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보라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1:35-37)고 함과 같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에 대해 놀라는 그런 믿음의 순박성과 함께 그 과분한 은혜에 대해 마음에 새기는 믿음의 섬세한 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그가 처녀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태하게 될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하고 반응한데서 우리는 마리아의 결연한 믿음의 절정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기를 갖게 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미혼녀들이 임신하게 될 때 당하게 되는 그런 수치와 수모의 정도가 아닌,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죽음에 대한 각오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1)아브라함이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결연히 순복한 것에 버금가는 것이며, (2)또한 우리 주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침례받기 위해 요단강에 오셔서 그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실 때에 주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심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또한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하고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온전히 바치신 주님의 희생정신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4)또한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하고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온전히 바치신 주님의 희생정신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5)또한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5:24)고 가르쳐주신 주님의 제자 정신에 합한 결연한 믿음의 역사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이천 여 년 전 나사렛에 살던 한 시골 처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후에 사람들에게 권고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2:5)고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이 자기에게 말한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1:37)고 한 그 말씀이 추호의 착오도 없이 그대로 자기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권고가 아니었나 생각됩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에 대해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고 순복했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지요? 이에 순복한 마리아는 후에 사람들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고"라고 권고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어떤 경우인지요? 우리도 마리아처럼 남에게 그런 권고를 할 수 있으려면 주님의 말씀에 조건 없이 순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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