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 하늘로 좇아 경고하시는 하나님(God Speaking fr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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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37회 작성일19-11-16 17:13본문
하늘로 좇아 경고하시는 하나님(God Speaking From Heaven) (히 12:25)
요한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번역: 여 성 모(한국 엠마오 성경학교)
사도는 히브리인들에게 이 권고를 기록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시는 특성과 그 결과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경고하시는 특성은 특별히 땅에서 하신 경고와 대조되는 “하늘로 좇아” 하신 경고에서 제시 되고 있습니다: “땅에서 경고하신 (즉 그리스도께서 시내 산에서 자신의 의로운 율법을 선포하시며 말씀하시던 때를 두고 말합니다)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이제는 하나님의 우편, 영광중에서)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이제 하늘에서 경고하시는 그리스도와 당시 땅에서 경고하시던 그리스도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일어났던 증거는 범죄자들에게 훨씬 더 큰 결과를 예고하는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 사건은 이어지는 경고의 말씀을 재가(裁可:결재하여 허가하는 일)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바로 우리 성도들이 이 일들 가운데 있습니다. 이 일들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일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런 일들에 둘러싸여서 “하늘로 좇아 경고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이와 같은 곳이 성도가 서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성도는 동시에 완전한 축복, 곧 비길 데 없는 소망을 알고 있는 자 인 것입니다. 그는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는 음성을 통해 완전한 축복을 알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 외에는 의지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풀무불보다 더 뜨거운 십자가를 통해 연단된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확고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흔들리거나 변동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나 예수님의 말씀과 관련되지 않은 것, 흔들릴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변동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반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음성이 발해질 때, 이 하늘의 특성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은 분명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 동일한 말씀은 믿는 자의 깊은 축복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예수 외에 의지 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는 의의 길에 있어서만 예수께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예수에게 의지합니다. 왜냐하면 그밖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때가 종결될 때 은혜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땅을 흔드셨습니다. 그 광경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습니다. 산이 온통 불에 휩싸이고,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큰 공포를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축복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움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 12:18-24).
여기에서 우리는 믿는 자들로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이 세대의 특성을 봅니다. 명목상으로 이 말씀은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교회에게 주어지지만, 실상 이 말씀은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만 진리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 앞으로 나아 왔습니다. 그들은 이 음성이 하늘로 좇아 그들에게 말씀되었고, 이 음성을 들은 그들은 이 음성이 예수님의 음성이라는 보증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셨던 그 모습으로 나타나사 그 영광으로 좇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배우게 되는 사실은 땅에서 말씀하셨던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 4:9). 주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자신의 백성이 실패했던 모든 일, 그리고 자기 백성의 행복에 반하여 작용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완전히 성취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은 지금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낮아지사 피곤하고 슬픔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경험하신 분, 십자가에 달리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 나사 하늘에 오르신 바로 그 동일하신 분이시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을 겪으시고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그곳으로 초청하고 계신 분이 비로 그 동일하신 그리스도이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의 기쁨이 됩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로 좇아 그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거 하십니다. 그 음성은 평화의 증언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죄를 극복하심으로, 즉 자신의 백성을 담당하사 단 한 번에 자신을 드리는 희생으로 그 죄를 영원히 제하심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입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해 너희를 막고 있던 죄를 내가 완전히 제하고 아버지 앞에서 너희의 대표자로 안식과 영광에 들어갔느니라. 이 음성을 듣고 이 음성을 알 때 우리는 평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말씀하실 때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행하라고 맡기신 모든 역사를 완수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의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개별적으로 초청하실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동일한 일을 의식하게 하십니다. 구속주, 죄를 감당하신 주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시고 완벽한 희생으로 자기 백성을 완전하게 사면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사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너희에게도 내가 완수한 역사의 결과를 말하노라: 지금 나는 너희를 데려가려고 하는 바로 그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그리고 만일 지금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어떤 영혼에게 말씀하신다면, 바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실제로 이 음성은 매우 희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 음성이 선언하는 바이니, 곧 예수님께서 영혼에게 하시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름 아니라 긍휼, 무한하고 상상할 수 없는 긍휼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불쌍하게 떨고 있는 영혼이여, 진실로 이 이야기는 그대의 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지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깊은 생각들, 마음 속 깊은 곳을 탐색하는 이야기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은 평화, 복된 평화를 위한 것입니다! 이 음성은 지금도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 죄들이 사라졌다. 완전히 제거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 죄들을 속하기 위한 율법의 요구는 더 이상 없다.” 진실로 여러분은 이 세상에 대해 계속 슬픔을 가져야 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고 거부한 세상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모든 축복의 창시자를 거부하며 완전한 적의를 나타내었던 그 세상에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하였고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아버지께 되돌아 가셨습니다. 세상은 우리 주님을 전적으로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셨을까요?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천국에 계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 음성이 선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일들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낮아지심으로 오셨을 때 세상은 우리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을 때 우리 주님께서도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땅에서 자신이 거부당하셨으나 세상을 경험하심을 완전히 인정받으시고 세상의 가장 뿌리 깊은 악을 이기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은 이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축복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완전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한 때 땅에서 말씀하셨고 지금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 완전한 구원과 함께 자신이 약속하신 모든 것의 완전한 성취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좇아 말씀하심으로 인하여 신자들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이르게 될 모든 일을 아는 특권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이 음성이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접의 확신뿐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도 소유하며, 승리뿐만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이르는 특권인 축복까지 소유합니다. 신자들에 부르심을 받는 분깃은 진실로 복됩니다! 구원은 신자들을 위해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구원은 현재의 구원입니다! 이 음성은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나 먼 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음성은 능력으로 영혼 속에 전해지면서 이런 일들이 현재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음성은 영혼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에 이 일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다.” 믿음은 이 일들을 매우 가깝게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 신자의 자리입니다. 즉 이곳은 신자가 연합되어 특권을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방해하고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말씀을 하늘로 좇아 하십니다. 따라서 그의 음성은 평안의 음성, 모든 상황에서의 평안을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인간 생활의 갖가지 과정과 시련에서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과정과 시련 중에 우리는 기진하여 힘들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승리의 평온함 가운데 앉아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오직 평안의 말씀입니다. 박해와 고통과 재앙이 땅으로 좇아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로 좇아 들리는 음성은 평안만을 말씀합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은 평안과 안식의 말씀입니다. 이 평안과 모순되는 말은 어떤 말이든지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일치가 그리스도인의 위치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창 2:23)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고, 괴로움을 당하고, 우겨쌈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우리는 “진동치 아니하는 것”에 이르는 것입니다 (히 12:2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 6:17). 사실상 이 땅에서 이 일이 단지 희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일은 믿는 사람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에 의해 사실로 알려집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약점 투성이의 “옛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따라, 예수님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으킴을 받습니다.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구주이십니다. 이제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데리고 가심으로 우리가 그 분을 뵙게 될 바로 그 곳에 계시다는 보증으로 하늘로부터 말씀하십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셨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 영원히 완성되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평안의 완전한 증언을 말씀하십니다. 필연적으로 이 말씀은 평안의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평안의 사건의 결과들로서의 축복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이 말씀은 오직 평안의 말씀입니다.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7).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이 평안을 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와 반목하는 한, 인간은 평안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여된 모든 책임을 감당하시고 모든 장애들을 극복하셨습니다. 이 길이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얻기 위해 죽으셨고, 결국 얻으셨고, 이제 진리와 확신으로 증언하시는 것이 바로 이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눈을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는 분에게 고정시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앉아 평안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평안은 인간의 죄의 범위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특전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을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이 축복은 인간의 죄를 극복하신 하나님의 뛰어난 위대하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심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과 그 약속의 확실한 성취를 보게 됩니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히 12:26-27).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과의 연합을 보았고 신령한 일들에 이릅니다. 이 신령한 일들은 확고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보증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도 변동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이들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 흔들릴까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은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절대로 변동될 수 없습니다. “천만 천사와 총회와.” 이들이 흔들릴까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늘에 한 번의 큰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반역하는 천사들은 흑암 속에 던져져서 그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교회와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그러면 이들은 흔들릴까요?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온전해졌기 때문에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 이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것들을 안전하게 하고 유지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확고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여러분은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될 곳에 거하시는 예수님에게 이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땅에 계시지 않고 영광중에 거하십니다. 전에 예수님께서는 땅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땅의 인간들은 그 분을 싫어했고, 따라서 그 분을 거부했습니다. 과거에 시내산에서 예수님의 음성은 땅을 진동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면서 하늘로 좇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한 번 진동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진동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한 번”이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주목할 만한 표현을 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한 약속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심령에 감동을 줍니다. 이 말씀은 약속된 진리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하늘로 좇아 하신 약속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인도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셨다는 사실을, 즉 우리가 이 약속을 믿고 그 성취를 기다리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하늘에서 온 음성을 깨달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사단과 세상과 육신이 하나님을 반대하고 적대하여 꾸민 모든 것이 파멸하기까지 무섭게 흔들릴 것을 알고 기뻐합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나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깨닫고 그 말씀이 성취되기를, 즉 그리스도께 반하는 모든 것들이 폐지될 때를 기쁨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진동될 수 없는 모든 것들과 나를 동일시하시려고 하늘로 좇아 내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도 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은 성도들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권들이 온전하게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고 막는 모든 것이 제거되는 것을 볼 때 성도들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땅을 무섭게 진동할 그 무서운 음성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이 복된 음성이 다름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과 평안에 대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들었고 확인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다른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자들인 형제들이여, 우리가 진동될 수 없는 것들로 확정되고 결정되었으며 우리가 거기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예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붙들린 자. 즉 흔들림을 면할 수 없는 것들에 안주하는 자에게 완전한 재앙인 이 엄청난 진동이, 진동될 수 없는 것들 따라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들에 속한 사람에게는 완전한 기쁨인 것입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 21:25). 이 진동의 때가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마음과 애정을 두고 있는 것들, 여러분이 연합하고 있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이 음성은 더 많은 것, 즉 진동을 견딜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변동되어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일보다 더 많은 것, 아니 우리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음성은 신자들의 완전한 축복을 내포합니다. 그 때에 신자들은 하나님의 확고하심에만 의존함으로 예수님의 완전하고 온전한 기쁨 안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그 때에 모든 피조물이 진동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 오직 그 사람만이 그 진동을 견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장차 그가 개인적으로 들어가게 될 곳, 즉 부정하고 불안정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할 곳에 지금 영적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 두 가지 기초에 의지합니다. 첫째로, 믿는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좇아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사실에 의지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약속된 만물의 격동과 혼란 중에 평안을 말씀하시고 따라서 믿는 자 스스로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없애십니다. 둘째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모든 것이 파기될 때 하나님의 약속은 굳건히 설 것이라는 사실에 의지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한 관심과 관련된 모든 일들의 분리를 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일들은 하나님의 일들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지는 전혀 성질이 다릅니다. 따라서 절대로 연합될 수가 없습니다.
죄악된 세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던 시기가 지나자마자, 곧바로 진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때에 은혜의 길에 있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의하라는 경고가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막 13:37). 이 경계는 모든 반대 가운데 성령의 생명을 주시는 능력으로 도우심을 받으며 끝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삶은 경계의 삶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이생의 삶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장래를 바라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 15:19). 믿는 자는 이생 저편을 바라봅니다. 그는 영원한 일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땅에서도 그는 방해가 없고, 자기 자신 외에는 조금도 장애가 없는 신령한 기쁨 가운데 들어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화복을 완벽하게 하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역사에는 방해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절대적인 완전성의 표적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정복되고, 제거되고, 극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모든 것을 완료하시고, 완전한 승리 가운데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백성에게, 즉 우리에게 계속하여 평안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평안의 의식은 성령에 의해 우리 연혼 속에 역사됩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참여하신 기쁨과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평안을 증거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도 역시 들어가게 될 그 영광을 믿고 기대하여 충만한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십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 6:20).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유일한 평안의 근거이며 시련과 투쟁과 고통 중에서도 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믿는 자의 특권입니다. 믿는 자는 지금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지금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는 예수님에게 의지함으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그 평안, 주님과의 연합과 일치와 동일성에서 솟아 나오는 그 평안을 소유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늘로 좇아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평안을 말씀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평안을 얻는 특권을 받으라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개인적인 죄악이 제거된 것을 알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그 이상의 질문을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장차 제거될 것과 얼마나 먼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하늘의 음성은 진동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제거될 것이라고 증거하고 약속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것들과 어떻게든지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런 모습의 여러분을 발견하시고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땅에 속한 자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땅에 속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사도는 빌립보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9). 하늘로 좇아 말씀하시는 음성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즉 땅에 속한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엄숙하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땅의 것들에 종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심령과 애정과 열망은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을 향하고 있습니까? 진동될 수 없고 변동될 수 없는 것을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만물의 진동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 안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진정 복이 있는 자들이며, 영원무궁토록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정착한 사람들은 장차 그리스도와 영광중에 연합될 때 안전할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현재도 안전합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또 한 번 묻겠습니다. 만일 지금 이 진동이 임한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발견되겠습니까? 제거되어야 할 것들과 함께 섞여 제거될 것이라는 생각 가운데 떨고 있는 모습의 여러분이 발견될까요? 아니면 만물을 흔드시는 분의 심령에 의지하여 온전한 평안 가운데 견디고 있는 모습의 여러분이 발견될까요? 주님께서 후자의 상태에 있는 여러분을-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생각하며 여러분의 주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여러분을-발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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