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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 아담과 그리스도(Adam and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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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395회 작성일19-11-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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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리스도 (5:14~21)

 

요한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번역: 여성모(한국 엠마오 성경학교)

 

5:14-21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5장의 뒷부분에는 아담에 의해 초래된 죄와 그 죄의 결과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은혜가 서로 대조되어 인상적으로 제시됩니다.

 

이 부분은 첫 사람 아담과 대조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아담은 그 무죄함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와 진리의 근본이며 모든 믿는 자들의 대표였고 아담은 모든 죄와 불행의 근본이며 본질적으로 모든 죄인들의 대표였습니다. 이 구별은 고린도전서 15장에 언급됩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느니라” (고전15:47)

 

그리고 로마서 514절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는 그 다음절에 증거 됩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15) 이어지는 대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16)

 

여기에서 우리는 아담의 죄의 결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전체적으로 개관합니다. 즉 우리는 여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문제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봅니다.

 

시편에서 우리는 수난과 시련과 유혹과 고통을 받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봅니다. 그리고 성경 도처에서 우리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삶과 생각과 감정과 인격을 봅니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악과 불행 가운데 있는 죄악된 세상의 머리와 뿌리를 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는 인간의 죄와 타락을 이기시고 생명으로 다스리시며 새롭고 산 길”(10:20)을 여시는 복된 세상의 머리와 뿌리를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혼들을 하나님에게로 직접 구원하신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간의 악을 정복하셨습니다. 즉 가장 악한 인간이라야 행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악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악을 완전히 정복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행해오던 악을 (그리스도 안에서)그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감히 받지 못할 축복에 있어서도 오히려 넘쳐나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행해오던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버리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광대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모든 일에 있어서 인간에 대하여 정 반대 된다는 사실을 드러내시기를 위함이었습니다.

 

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죄가 이루어 놓은 악에 상응하는 치유책이며, 불법의 무게에 맞는, 아니 불법의 무게를 능가하는 치유책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안에서 이 치유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과 수단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신의 선하심을 나타내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기쁨의 본질이 되시고, 그들의 영혼의 안식이 되시고, 그들의 소망의 대상이 되시고, 그들이 사모하는 열망이 되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께서 고안하시고 하나님 자신께서 수행하신 하나님 자신의 방법과 수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악이 넘쳐 났고 죄는 멋대로 활개치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첫 사람 아담에게서 그 뿌리와 발생과 과정을 추적할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에서 우리는 인간의 심령이 하나님에게서 완전하고 철저히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전능하신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으로서 그 하나님에 대한 사실상의 부정이며 거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의 실제적인 결과는 하나님보다는 오히려 사단을 신으로 받아드리고 의뢰하고 신뢰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지금 현재 처한 세상의 자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님을 거부하고 사단을 신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들은 모든 은총의 소망을 상실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축복에 대한 모든 요구권을 박탈 당했습니다. 온 세상이 적극적으로 자진하여 이같이 행하였습니다. 모든 개개인이 이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와 같이 행하고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개개인을 세상의 원칙과 욕망과 정신 밖으로 불러내셔서, 모든 일에 대하여 그리스도 자신에게만 의지하도록 함으로 안식을 주시고 첫 사람 아담 (그리고 그 뿌리에서 나온 개인 자신)이 행한 바를 그의 영혼에서 그치게 하시고, 그를 하나님의 후사로 만드시고 그의 심령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성령을 두시고, 그로 하여금 나의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외칠 때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원칙과 느낌과 실질적 신분의 종합된 의미를 알고 깨달을 수 있게 하실 때까지 입니다. 거기로부터 우리의 모든 소망과 행복이 솟아납니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삶을 살도록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불순종의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2:2) 마귀의 지배를 더 이상 허락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첫 사람 아담의 범죄들로부터 해방을 받고, 더 이상 세상이 지금 현재 처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아담의 죄는 하늘에 계신 주권자의 진노를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범죄이후 아담의 정 반대에 해당하는 인간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모든 환경과 모든 처지에 있어 이러한 진노의 상황을 만족 시켰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먼저 창조 때의 아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아담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아담 안에 신성의 충만함이 온전하게 거하는 것을 봅니다. 만물이 그에게 복종합니다. 만물이 아담의 아래 두어졌습니다. 모든 짐승들과 생물과 무생물계가 그에게 굴복합니다. 모든 만물이 그 앞에 나왔고 그는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19)

 

시편 8장은 4절부터 분명히 이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을 인용하는 히브리서 2장에서 우리는 이 언급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저를 잠간 동안 (낮아지심에 있어)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2:7)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2:8 :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만물이 저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직사도는 말합니다.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는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2:9)

 

여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새 창조의 머리이며 뿌리가 되시는데. 그리고 이 사실은 그의 부활하심을 통하여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심으로 죄를 없애는데 필요한 모든 일 즉 죄로 말미암은 고난, 죽기까지의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구세주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이 옛 창조의 머리였던 것처럼 새 창조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을 잘 살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가 죄악 된 세상의 머리와 뿌리라는 자격을 받을만한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가 행한 행동을 통하여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어려운 상황들에서 정반대의 행동을 나타내심으로) 휼륭하게 자기 백성의 머리로 자격을 부여 받으셨습니다. 아담은 무죄한 세상에 두어졌습니다. 그는 모든 축복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신 크신 하나님에게 사랑과 감사를 일으킬 수 있고, 마땅히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모든 거룩하고 의로운 감정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안에 신뢰하는 마음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의 형상을 반영하시고,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진실로 아담은 하나님과 이 세상을 연결하는 고리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뢰를 받으며 이렇게 고귀한 상황에 두어지고 또한 만물이 그를 위해 만들어진 아담, 이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잠언 8장에 나타내는 바와 같이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8:31)

 

이 신뢰와 신임과 기쁨의 상황에 이어진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이 어떻게 행동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완전무결하게 순결한 원래의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였습니까? 우리 영혼의 원수가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활하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불이행의 경우에만 느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위협의 말씀을 듣고서도 곧 바로 이렇게 부언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4~5)

 

애초부터 우리 영혼의 원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논박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인식은 그의 순종을 다짐하는 서약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최고 주권자로서 하나님께서 순종을 받으시는 만족을 취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말은 그는 주님께서도 이 순종을 받으실 권리를 갖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불순종을 할 경우에 하나님께서 벌하시겠다고 엄위하신 위협을 하신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고 말씀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을 모욕하기를 마귀가 바라고 있는 세 가지 사실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며 그리고 세번째는 하나님의 신성의 위엄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제안에 따라 인간이 실제로 행동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했던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마귀와의 거래에서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이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와 위엄을 부정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에게서 우리는 이 세 가지가 옹호되고 존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 (1:17)이며, 여호와의 위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사단과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위엄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보도록 합시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에게 모든 은총을 베푸시고, 온 세상에 그로 하여금 자신이 나타내신 사랑의 본보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단 한 가지 명령을 주어 그가 그 쉬운 순종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총들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정황에 사단이 다가와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여차여차 말하더냐? 너는 그 말을 믿느냐? 그는 네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노라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네게 주지 않으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지 말아라. 그의 명령은 너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너를 속이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그것을 먹으면 자신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네게 그것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때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 자신의 특권들을 취하라는 다음과 같은 유혹이었습니다. “네가 신들과 같이 되리라

 

여기에는 당시 아담이 있던 위치에서 하나님을 모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담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가(또는 그녀가, 이 말은 우리의 취지에 있어 동일합니다.)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적극적이고 사전에 인지된 불순종 가운데 그 실과를 먹었습니다. 그는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눈앞의 쾌락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세상은 정확하게 동일한 원리들에 따라, 정확하게 동일한 근거에 따라 행동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을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나는 나의 이웃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나는 부정이나 도적질이나 살인 등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아담도 그러했습니다. 그도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그의 행동이 그의 범죄에 모든 사람을 끌어드린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가 비난받아야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위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위엄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마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함으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마귀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의 정반대되는 말에 문제가 존재합니다. 인간은 어떤 말을 믿을까요? 마귀는 인간에게 현재의 쾌락을 제안합니다. 그는 그 결과들은 아랑곳하지 아니합니다. 마귀는 그렇게 인간을 타락으로 유혹합니다. 그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6:23)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도 당장 보이는 쾌락들로 인해 다른 것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현재의 쾌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면서도 하나님의 권능은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아담이 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우리 모두 선천적으로 말려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마귀를 믿었습니다. 그는 마귀가 하나님보다 더 진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귀를 하나님보다 더 좋은 친구로 보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의 약속과 말을 신뢰하는 정도로 말입니다. 그는 마귀의 말을 하나님의 율법 자리에 두었고, 하나님을 무정하고 인색한 심판자로 보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신과 같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 좋은 것을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사단의 지배에 복종할 때 가졌던 판단이었습니다.

 

이제 아담이 죄를 범한 다음의 행동을 살펴봅시다. 그의 행동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가 어떤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그의 죄를 알아내시는 하나님이 없었다면 그는 매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위임하신 아담이 그 하나님을 피해 숨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심을 품고 자신을 마귀에게 팔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거부하고, 마귀를 신으로 받아드렸으며, 그 뿐만 아니라 마귀의 뜻에 복종하여 절하는 범죄에 자신의 자손 전체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세상은 바로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게 되었으며 바로 그 세상에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세상은 유일하게 처벌받지 않은 배신의 살아있는 예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들이 곧 임할 것입니다.

 

인간은 배신을 하고도 아직 살아있는 유일한 지적 존재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의 경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그들의 죄는 즉각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을 가져왔습니다. 인간만이 불신앙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정죄를 받았지만 아직 사형 집행은 유예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 인간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과거에는 자신과 친밀했던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숨어 있는 곳에서 끌어내십니다. 그럴 때에 인간의 첫 번째 행동은 어떤 것일까요? 변명입니다. 그리고 여기 변명 속에서 다시 세상은 가장 정확하게 그의 본보기를 따릅니다. 그들은 죄를 지으며 자신들의 범죄, 유혹, 선천적인 정욕. 사리 추구에 대해서도 변명하며 또한 경시하도록 하기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의거하여, 인간 스스로 자신이 정죄 받아야 할 정당한 근거와 정당한 이유는 없다라고 변명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한 가지 예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초청을 받은 사람이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변명은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라”(14:18)는 것이었습니다. “불가불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주님의 초청보다 자신의 만족을 택한 것입니다. 바로 아담도 그러했습니다. 그의 변명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3:13) 그가 말하는 변명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정죄하시는 근거입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 즉 아담은 자신의 입의 말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사람을 봅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특징에 있어 이와 정반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이 수치스럽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명예를 손상시킨 크신 하늘의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위엄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완벽하게 옹호하시는 것을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를 옹호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에 대한 위대하신 증거자로 오셨고, 그 죄의 삯을 전가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완벽하고 완전무결하게 거룩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진하여 범죄자로 간주되셨고, 하나님의 진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죄에 동반시키셨던 형벌 (“네가 정녕 죽으리라”)을 담당하셨습니다.

 

만일 이 땅에 어떤 사람이 이 무서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신성의 모든 점에 있어 심오하게 거룩하시고, 죄악이나 죄악과 유사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시고, 가장 미세한 악의 그림자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진하여 죄를 전가 받으셨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만일 이 땅의 어떤 사람이 이 무서운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면 그 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서운 벌을 말씀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증거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의 잔혹성의 어떠함과 죄의 결과들의 무서움과 죄의 가증함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함에 대하여 만일 우리가 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동역자이시며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의 죽으심 말고 이디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볼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32)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입증하신 것도 봅니다. 인간이 인간인 자기에게 바람직한 것을 감추고자 하시는 인색하신 하나님으로 보고 있는 그 하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범죄 함을 인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바로 여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지요! 예수님께서 의로우시고 거룩하실수록 인간의 죄로 인해 그 분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분이셨습니다.(고후5: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고난과 수치를 받으셨고, 아담이 맨 처음 위치했던 모든 상황과 정반대되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축복과 위로 가운데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빈곤과 최고로 낮아지심과 재앙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까지 하실 수 있었습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69:20)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26:38) “내 마음은 촛밀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22:14)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22:16)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22:14)

 

아담은 하나님께 변절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낯을 완전히 뵈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정 반대 되는 것들밖에 볼 수 없는, 생각만 하여도 두려운 사실 아래 처하셨습니다. 시편 22편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실 모욕들 중 일부를 열거하며 내 겉옷을 나누며 내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22:18)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22:13)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덧붙어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범죄의 가장 무서운 결과들을 그의 영혼에 갚으실 때 그들의 죄를 위해, 그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을 낯을 뵈옵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숨을 거두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서 위로의 낯을 돌리실 때 극한 무서운 고민으로 그리스도의 영혼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규가 솟아 나왔을 때에도 그 의 영혼의 말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22:3) 이었습니다. 가장 극심한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의심은 절대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마음을 스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말은 유혹자가 던진 미끼였고 이 미끼는 인간을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부터 떼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에 반하여 어떻게 행하셨을까요? 다시 시편 22편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6)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2:7) 인간은 하나님이 되기를 열망하여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이셨으며 자신을 낮추어 사망의 진토”(22:15)에 두심으로 자신의 인격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범죄로 자신의 백성에게 지워진 보든 죄책을 충족시키셨음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눈에서 죄를 가리거나, 죄를 감추거나, 변명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무에서 자신의 몸에 자기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셨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거부하거나 감추려고 하기는커녕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니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38:9)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의 비통함을 느끼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14:34) 왜 그러셨을까요?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니” (벧전2:22)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께서는 내 죄가 주의 앞에 숨김이 없나이다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69:5~7) 그러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 고백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 결과에 복종하시며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자신의 죄로 삼으사 그 죄악들과 그 죄악에 마땅한 처벌들을 담당하심을 믿음으로 볼 수 있을 때, 그 죄악들을 하나님께 높이 들어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영원히 담당하심을 볼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위엄과 하나님의 사랑에 반()하여 범한 죄악들을 대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리셨음을 볼 수 있을 때, 이때가 바로 우리의 평안과 위로가 되는 축복입니다.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입증하면서 자기의 백성의 머리가 되시기에 충분한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범죄가 인간에 의해 들어왔기 때문에 인성을 가지신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분으로 적격이셨습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그 가치라는 면에 있어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공로가 될 수 있게 하였고 또한 모든 인간의 죄를 담당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 역사는 믿는 자가 첫 사람 아담 안에 어떤 사람이며 두 번째 아담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알려줌으로 그에게 개인적인 충만한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속죄일의 대제사장으로 봅니다. 즉 피를 가지고 장막 안으로 들어가 뿌리고 자기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인정한 다음(참조, 40), 그 죄를 희생 제물의 머리에 옯기고 망각의 무덤 속으로 가져가는 대제사장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대신하는 크신 고백자로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를 담당하시는 한편 자신의 몸과 영혼으로 죄의 결과들을 감당하시어 죄 값을 받으심으로 영원히 없애버리십니다.

 

이 모든 사실을 완전무결한 의지와 순종으로 기억하도록 하세요. 가망이 있을 때 이 놀라운 기억을 방해 받지 않도록 하시고, 또한 이 주님을 기억하는 일을 제안 받게 될 때 이를 거절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잔을 피하지 않으심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받은 완전한 축복을 기억하십시오! 비록 괴롭고 슬픈 심정으로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22:19),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받으시되 완전무결한 방법으로 고난을 받으셨고 그리함으로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주가 되셨습니다.

 

믿는 이들이여, 그런데도 여러분은 주 예수님에게 이와 같은 고통을 가한 그러한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세상과 주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들 사이에 모든 일에 있어 완전히 구별되고 반대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의 유업 가운데 행고 있습니까? 아니면 두 번째 아담의 유업 가운데 행하고 있습니까? 실제로 생각, 감정, 행동, 또는 추구에 있어 우리는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 세상과 실제로 일치하고 있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는 자들입니까? 그리고 이 교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형제라고 칭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하고 느끼게 하는 바로 그 교제입니까? 모든 인류는 선천적으로, 당연히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온전” (벧전5:10)(1:28) 하게 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나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2:10). 모든 사람이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와 수치의 후사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될 것이며(뿐만 아니라 물론 지금 현재에도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분해될 수 없는 생명의 결합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특권과 관심과 축복에 있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그리스도께서는 축복이나 영광이나 자신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

 

하나님의 진리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관심과 개인적인 교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추구합시다. 그리스도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도록 하기위해 노력합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시면 주실수록, 더 많은 은혜를 주시면 주실수록 그 분께서는 더 영광스러워지십니다. 분명히 우리가 선천적으로 첫 사람 아담과 연합하고 그의 모양과 형상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만일 우리가 믿는 자들이라면 확실히 모든 일에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인 것입니다.(8:17)

 

지금 현재의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이 우리의 영광스러운 머리를 봅니다. 그러나 곧 우리는 모든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뵈올 것이며 동일한 영광으로 변화 받을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축복을 열어 보여줍니다. 모든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제인 우리는 지금 시작되어 장차 끝없이 복된 영원 가운데 완성될 연합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충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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