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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지 회심이란 무엇입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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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742회 작성일19-11-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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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이란 무엇입니까?(2)-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작성자:C. H. 매킨토쉬

 

 

성경은 성경의 권위에 머리를 숙이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의 권위를 의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라고 하는 이 말씀은 그 말씀 자체의 영적 권위와 영적 엄숙함을 갖추고서 타락한 아담의 모든 후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지구상의 수십 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그 중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있을 수 없습니다. 회심(돌이킴)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지금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회심 없이는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심하지 못한 모든 영혼은 자연 모두가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회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사단의 수하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죄로 인하여 흑암의 권세 하에 있으며 지옥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사람일 수 도 있습니다. 흠 없는 명사일 수도 있습니다. 높은 위치의 종교 지도자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포도원의 일꾼일 수도 있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시인했다고 하는 교회의 공적인 일군일 수도 있습니다. 자격을 갖추고 있는 선교사일 수도 있습니다. 집사, 장로, 목사 또는 카톨릭 주교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가장 자비심 많은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종교단체나 자선단체에 아낌없이 많은 돈을 바치는 울륭한 기부금 수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나의 인격과 도덕적 영향력 때문에 우러러 보임을 받는 자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거나,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바라는 매우 바람직한 사람일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을 소유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하지 못했다면 나는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자요, 사단의 왕국에 속한 자요, 죄책감의 소유자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 직통하는 넓은 길목에 서 있는 자입니다.

 

이것은 바로 마태 복음 18:3절 말씀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의 정확하고 분명한 의미이며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또한 그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는 우리 모두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 말씀은 태양 빛과도 같이 분명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엄청날 정도의 위엄의 무게를 가하는 그와 같이 장엄한 위엄으로 이 지상에 있는 모든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거리를 배회하고, 짐승보다 못할 정도로 타락한 술주정뱅이에게나, 또는 회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직자의 직임을 맡은 자에게나, 또는 몇 날, 몇 주, 몇 달, 몇 년이라 할지라도 계속 금주하는 것을 자랑하며 항상 방정(方正)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우월감을 갖는 절대 금주자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자들이요, 똑같이 자신의 죄 속에 갇혀 있고, 똑같이 영원한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술주정뱅이에서 돌이켜 방정(方正)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축복할 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술 취함에서 돌이켜 절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러한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헛된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도덕적 표준에 만족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술주정뱅이와 절제 자 사이에 외형적 차이점은 분명 존재 합니다. 즉 금주 자는 자신의 절제하는 마음 위에다 도덕적 성취를 이룬 자기 자신을 올려놓고 자신의 도덕성을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 자신은 옳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도 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헛된 사상으로 자신을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는 옳은 사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술주정뱅이는 틀림없이 잘못된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은, 술주정뱅이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못한 상태의 술 절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사실입니다. 사실은 둘 다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하나님께로 회심하는 것이 절대 필수적인 것입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또는 여러 생활 수준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또는 모든 피부색의 사람들로부터, 모든 사회 계급으로부터, 그리고 해 아래서의 모든 환경의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동일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큰 폭의 질문에 대해서도 다행히 그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해답의 말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든지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진정 돌이켰는가(또는 나는 진정 회심했는가?)" 라는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고 또 매우 엄청난 질문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이 질문이 갖는 중요성과 위엄을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한 인간이 매일 또는 매년 이 귀중한 질문에 대한 확실하고도 확정적인 해답 없이 계속 이 생각에만 머물러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어리석은 자로 지목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것 때문에 그 자신 더욱 죄책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간이 그 자신의 세상 문제를 불확실하고도, 가장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악하고 못된 자기 무관심과 자기 부정이라고 하는 송사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과 비교해서 현재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긴박하고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불멸하는 우리 영혼의 유익과 비교해 볼 때(불멸의 영혼은 가장 중요한 영원의 실재입니다.) 이 문제를 제외한 모든 세상 염려는 단지 여름 타작 마당의 겨와 같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께로 회심했다는 분명하고도 평안한 확신 없이 단 한 시간이라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될 정도의 어리석은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회심한 심령은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의 분계선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그 분계선은 흑암의 자녀와 빛의 자녀를 구별하는 분계선이며, 이 악한 현재의 세상과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하는 분계선입니다. 회심한 심령에게는 사망과 심판은 뒤에 있고 오직 영광만이 앞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그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과 동일하게 천국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은 회심한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 이미 천국에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의 명칭을 소유한 자이며, 어두움이 없는 내세를 이미 소유한 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알며,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로 알며, 성령을 자신의 축복의 위안자, 위로자 또는 인도자와 선생으로 압니다. 또한 천국은 자신의 밝고도 행복한 가정으로 압니다.

 

! 인생에게 회심했다는 것이 얼마나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입니까가! 누가 이 축복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믿는 자들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 이제 우리가 여기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이 회심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회심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에 한 점의 실수라도 있다면 치명적 재난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회심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회심이라고 하는 이 주제 얼마나 크고 중요한 사실인가 하는 문제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즉 그 사실이라는 것은 우리의 원수이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은 있을 수 있는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회심에 대해서 오해하여 잘못된 개념이나 잘못된 생각을 갖도록하는 일을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사단이 계속적으로 사람들은 이 회심의 문제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케 하는 데로 이끌지 못한다면, 한 술 더 떠서 사단은 그 회심의 본질에 대해서 사람들은 눈을 가리게 하는 일에 노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이런 저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세상 오락이 몹시 헛되고,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여 자신의 생활 변화의 긴급한 필요성을 동시에 느끼고 알아차리게 될라치면, 그 최고의 속임 자는 그런 사람을 오히려 종교적인 사람이 되도록 꼬드겨 예배 형식과 의식과 행사에 쉴 새 없이 바쁘도록 하여 무도회나, 파티나, 극장이나, 콘서트나, 음주나, 놀음이나, 사냥이나, 경마를 버리도록---다시 말해서 한마디로 모든 쾌락이나 오락을 버리도록 하여 오히려 소위 말하는 종교적 생활에 빠지도록 하며 또 모든 공적인 종교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케 하여 성경도 읽게 하고, 기도도 자주 하게 하고, 구제도 열심히 하게 하며, 큰 종교 행사나, 그 지방의 자선 단체를 지원하는데 헌신하게 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추구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회심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위에 열거한 모든 종교적인 일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전적으로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독실한 종교인이 자기의 전 생활을 철야라든가, 금식, 기도, 금욕, 구제 행위 등을 실천하면서도 그 자신 전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치 시들어 가는 나뭇잎이나, 말라죽는 꽃과 같이 세상에서 무가치한 대상물들만을 추구하면서 전 생애를 보내며, 생각 없고 분별없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세상 취미에만 탐닉하는 세상 취미 생활자와 같은 사람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아주 먼 철저하게 회심하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상기 두 인물(철저한 종교인과 세상 취미 생활자)들은 의심할 바 없이 크게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로 다르냐 하면 서로 외형적으로는 어는 다른 두 대상이 다를 수 있다고 할 때, 그중에서도 크게 다를 수 있는 그런 종류로 다른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인물들은 들은 모두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둘 다 자신들의 죄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실 하나는 "악한 행위(1:21)"에 몰입한 자요, 다른 하나는 "죽은 행실(6:1)"에 빠진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두 인물들은 모두 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요, 소망 없고, 끝없는 고통의 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이 두 인물들 가운데 어느 한편이 구원의 회심을 못했다면, 그 편의 사람은 다른 한 편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 속에서 자신들이 결국 들어 가야 할 자리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회심은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은 유대교나, 이방 종교나, 마호멧교나, 또는 카톨릭교에서 개신교로 전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회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지적 기준에서 볼 때 개신교인이 되는 것은 마호멧 교인이 되는 것보다 나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에서 볼 때 그들은 모두 공통의 플랫트홈에 서 있는 것이고, 둘 다 회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실로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 사실이겠지만, 회심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회심은 어떤 종교 제도에 영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 종교제도가 항상 순수하고, 항상 건전하고, 항상 권위가 있는 상태에 있는 제도라 할지라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기독교 내의 가장 존경스러운 종교 단체의 한 일원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회심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영원한 멸망의 길에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 신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떤 위대한 기준인 종교적 신념에 동의하여 기명으로 가입 서명할 수 있을 정도로 종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9개도(영국 국교의 신조), 웨스트 민스터 고백이나, 요한 웨슬레의 설교문에나, 폭스나, 바클레인이나, 또는 어떤 다른 훌륭한 신조에 가입 서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회심하지 못하고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에서 한 가닥의 소망의 빛조차 없는 비참하고도 영원하고 우울한 장소인 지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닥의 하나님의 생명의 빛조차도 없는 사람에게는, 제도나 신조에 따라 아무리 합법적으로 종교 문답을 할 수 있다 해도, 그 종교적 제도나 신학적 신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도나 신조가 심령을 살릴 수 없고, 구원할 수 없고, 영생을 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매일 매일 계속해서 맷돌을 돌리는 말과 같이, 한 해 한 해 종교라는 기계 장치 위에서 계속 반복하여 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황량하고 단조로운 죽은 행실로 제자리걸음만 하는 격입니다.

 

그런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모두는 어디에서 끝장 날 것인가? 죽음! 맞습니다. 바로 끝은 죽음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이 질문의 중요성과 심각성이 보다 완전하게 깨달아 지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더욱이 기독교 그 자체는, 완전히 만월의 빛 가운데서, 아마도 종교적 신념의 제도로서 옹호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영광스런 은혜의 교리와 함께, 충만하고도 값없이 받는 복음을 듣고, 행한 것 없이도 받은 구원을 배우고, 나아가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칭의까지 거의 입문하게 되어, 지식적으로는 구원을 받은 것인 양,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실 그가 입문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광스런 신약적 기독교 교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은 이 교리를 지식적으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 기쁨을 고백하고 시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작가로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복음을 웅변적으로 열의를 다해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지식적이 아니라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전혀 회심하지 못하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일 수도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귀한 복음의 진리에 지식적으로 익숙해진 나머지 회심하지 못한 채, 오히려 마음이 굳어져서,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파멸될 수도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의 진리라고 말할 때 그 복음의 진리란 그 사람의 이해의 영역을 초월하여 더 나가 본적이 없는, 다시 말하면, 그의 양심에까지는 결코 도달되어 본적도 없고, 그의 심령을 감동시켜 본적도 없으며, 결코 그의 영혼을 회심시켜 본 적이 없는, 진리라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가장 극단적인 예만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믿고 기뻐한다고 하면서, 또한 실제로 하나님의 복음을 설교하면서, 또는 기독교 교리의 가장 특이한 모든 진리를 가르치면서도 아직도 회심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영원의 길로 향하고 있다면,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이 불행은 그가 한 때 믿고 죽어 가는 모든 사람의 귀에 가장 영광스런 복음의 소식을 실제로 설교한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기 때문에 그 불행은 더욱 최고조에 달하는 것입니다.

 

! 독자여 당신이 누구이든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당신에게 간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위와 같이 언급한 사실들에 대해서 당신의 모든 주의력을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오류 없는 진정한 회심이 하나님 앞에서 확신 있게 확인될 때까지는 한시라도 안일한 마음을 갖고 쉬지 않기를 바랍니다.

 

C. H. 매킨토쉬 C.H.M의 약칭으로 알려진 C. H. 매킨토쉬는 금세기 최고의 강해서인 "모세오경"(생명의말씀사 간)의 저자이며 그의 대표적인 저술은 "Miscellaneous Writings"로 한 권으로 묶어 발행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성경교사로, 복음전도자로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으며 매거진 "Things New and Old"의 발행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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