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 복음의 깨달음(구원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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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82회 작성일19-11-16 20:17본문
복음의 깨달음
(김종현 자전적 에세이집에서)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불혹의 나이라는 40세가 넘어서 입니다. 아내와 두 아들의 눈물의 기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학교 일이며, 대학원에서 효학을 공부하는 일이며, 교감선생님이 되기 위한 연구 논문을 준비하는 일이며, 주일이면 테니스를 즐기는 일에 몰두하느라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내 건강과 내 신상의 영광만을 위하여 앞만 올려다보면서 정말로 바쁘게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복이 오고 당연히 천국에 간다고 믿으면서 살았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남을 많이 도와주면서 적선(積善)을 하며 착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죽으면 틀림없이 천국을 갈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으로 굳게 믿고 살았습니다.
아내가 주일이면 교회에 딱 한번만이라도 가보자고 애원하고, 유치원 다니는 두 아들이 "아빠, 우리의 소원은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교회에 가는 거야..."하면서 소망을 밝히곤 하였지만, 나는 "지금은 바빠서 안 돼", " 조금 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때 더 잘 즐기다가 늙은 후에 교회에 꼭 갈게. 약속한다." 하면서 아내와 두 아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아내의 애원하는 두 눈에 젖어 있는 눈물을 애써 못 본척하고 두 눈을 꼭 감고 외면하면서 부리나케 교회 앞마당을 횡하니 빠져 나와서 테니스장으로 내 달리곤 하였습니다.
그런 나를 아내와 두 아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랜 기간 기다려 주었습니다. 4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아내와 두 아들의 눈물의 기도 힘으로 동토 같이 얼어 붙어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녹아 내리면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에 다녀와서는 나와 아내는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가지고 많이 부딪쳤습니다. 나의 철저한 인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지식으로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두려움 없이 비판함으로 인해서 나는 아내를 또다시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교회 등 교회를 순례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잠만 오고 도무지 은혜가 없었고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충만으로 길거리의 가로수가 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늘 높이 두 손을 들고 경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가로수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의 권유로 성경공부를 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만들고 목사님이 총장으로 계신다고 하는 성산효도대학원 대학교에도 입학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너무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그 곳에서 자유 신학을 전공하신 목사님의 설명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너무 귀에 잘 들어오고, 공간 복음의 4복음서를 해부하고 쪼개서 비교해 보고, 결국 성경을 구전(口傳)으로 지어진 역사책들 중에 또 하나의 역사책 정도로까지 내몰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내는 너무 놀라서 그런 자유신학을 하는 교수가 고용되어 가르치는 학교에는 더이상 다니지 말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자유신학을 가르치던 그 교수님은 학교를 떠나 가시게 되었고 나는 어찌되었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그 학교는 무난히 졸업을 했습니다.
성경을 이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었지만, 은혜가 없이, 거듭남이 없이 성경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잔뜩 입력된 나는 대학원을 다니기 전 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그럭저럭, 나는 지금까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닌 주일 신자로 7년여 동안 성장이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를 따라서 아침 큐티를 하기도 하고 캐나다에 있을 때에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에도 참석하면서 조금씩 영적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살 때에는 존경하는 신실한 믿음의 장로님께 도전을 받아서 성경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보고 싶어진 나는 전심으로 갈라디아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나는 이 말씀에서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율법으로 가능하다면).... " 이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지 말라"는 내용과 "하라"는 내용의 두 가지 개념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아서, 내 행동이 의롭다고 판정될 수 있다면 예수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는 뜻이다.' 라고 묵상을 통해 말씀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번갯불 같은 빛이 지나갔습니다.
'맞아! 나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깨뜨린 자다. 나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했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지 못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거룩하지 못하다. 율법을 깨뜨렸다. 우리는 음란한 사람이다. 우리는 살인자들이다.’
‘하나님이 하라는 건 하지 못했어. 하지 말라는 것만 했어. 나는 거룩하지 못했어.’ 그래서 노력했지만 결과는 좌절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내 힘으로는 스스로 거룩해지지 못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였습니다.
아니 거룩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하나하나를 모두 깨뜨린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 "형제를 보고 미움을 품은 자는 이미 살인했다." 그러면 간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살인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복음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하나님, 저는 거룩하지 못한 자입니다. 율법을 깨트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자마자 내가 나를 구할 수가 없고 내 노력도 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맞아!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구나. 그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내가 받아야 할 분노와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피를 쏟으셨구나.'
나는 한 순간에 십자가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구나. 그를 의지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심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주시는 분 이시로구나.' 라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가운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나를 다시 살려주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거듭나는 것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었고 내 결단도 내 능력도 나를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 나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장대 끝에 놋뱀을 준비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도록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16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이처럼 사랑하사 장대 끝에 놋뱀을 준비하셔서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새로운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 없었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주셨나니." 거기서 흘리신 피만이 나를 죄에서 깨끗이 씻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될 자가 아니라 거룩하게 살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미 율법을 깨뜨린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의지합니다."라고 진정으로 고백할 때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의롭다고 해주십니다. 이제부터 새 생명으로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 출발이 있습니다.
이제는 꺼꾸로 교회는 다니지만 이런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거룩한 삶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죄사함을 받으셨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거듭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저에게는 거듭나고 구원받은 체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싶습니다. 거듭나고 싶습니다. 새로워지고 싶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깨달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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