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 하나님의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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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606회 작성일19-11-16 20:20본문
하나님의 일꾼(마9:37-38)
마9: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마9: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의 사람을 일컫는 자랑스러운 칭호 가운데 ‘일꾼’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꾼이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힘써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여러 번 그를 따르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이러한 칭호로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디모데를 이렇게 불렀습니다(롬16:21; 살전3:2).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이렇게 불렀고(롬16:3), 우르바노를 이렇게 불렀습니다(롬16:9), 또한 클레멘트와 그 밖의 빌립보 교회의 기둥 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으며(빌4:3), 빌레몬(몬1:1)을 이렇게 불렀고, 마가나 아리스다고, 유스도 그리고 누가와 데마를 이렇게 불렀습니다(골4:10, 11; 몬1:24). 아볼로(고전3:9)와, 디도(고후8:23)와 에바브로디도(빌2:25)도 이렇게 불렀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딤후2:15).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이 말을 직접 사용하셨는데 그 때 예수님은 그의 하늘나라를 위해 추수해야 할 일꾼이 심히 부족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마9:37-38; 눅10:2).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일꾼이란 칭호는 오늘날 그렇게 불려지기도 하는 하층 계급의 천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칭하는 것과 같은 그런 불명예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아드님이시며 또 그 자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즐겨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도되는 바울도 자랑스럽고 명예스러운 칭호로 사용한 명예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음의 세 가지 각도에서 이 명예스런 칭호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우리는 이 ‘일꾼’이라는 말을 우리 그리스도인 자신 곧 그리스도인 개인의 도덕적 기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행하심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 개인의 도덕적 표준이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 개인의 도덕적 표준 안에서 이 도덕적 표준을 향하여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 개인이 훌륭한 그리스도인 일꾼으로서의 스스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일꾼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일꾼은 그리스도인의 표준에 따라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라면, 그 일을 누가 간섭을 하든, 안하든 상관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는 누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하지 않으며, 오직 그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최상의 도덕적 기준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진리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긍지와 자부심을 살려가며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일답게 행하는 자입니다.
그는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며 일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 곧 성도(聖徒)들이나 집사(執事)들이나 감독자(監督者)들이나 장로(長老)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변함없는 믿음과 변함없는 사랑에 입각해서 잘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그는 보수를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일을 얼마나 빨리 해치울 것인가에 상관치 않고, 얼마나 잘할 것인가 만을 늘 생각합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최소한의 일을 하려고 생각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이란 실제로는 기술적인 능력 유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가 어느 정도 그리스도를 닮아 있느냐 하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표준의 문제에 속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몸인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우리 동역자이자 일꾼들인 지체들 각자의 소중한 책임감의 시각에서 조명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을 돌아볼 때마다 이 일에 그의 동역 자 일꾼들의 동역의 필요를 자주 언급 하였다는 사실을 볼 때 일꾼을 동역자의 각도에서 조명해보는 일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국가와 같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 인간 각각의 사회적 책임감의 각도에서도 유사한 조명을 볼 수 있습니다. ‘국부론’을 쓴 위대한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회와 경제 기구에는 ‘노동의 분산’이 기초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일을 스스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자신이 하고, 나머지 일은 다른 사람 곧 지체들인 동역 자들에게 부탁하거나 의존해야 합니다. 양복을 만드는 사람은 신발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양복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자동차 수리공은 자동차만 수리하고, 타자기 수리공은 타자기만 수선합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일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일을 할 때에는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의 증진을 위해서 기여하고 있다는 신념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각자 모두는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서로 서로에게 필요불가결한 존재인 것입니다.
모임의 지체들도 마찬가지이며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소중한 동역 자로서 일꾼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모임에 있어서도 모든 지체들을 모임을 세우는데 있어서 훌륭한 동역자로 인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우리의 동역자인 다른 사람이 각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모임의 지체들을 조직의 틀 안에서, 인위적인 능률이라는 미명하에 거역할 수 없는 보고체제를 확립하여 지휘하고 다스리기보다는, 앞서 먼저 격려하고, 그들의 필요를 세심하게 알아보고, 그들 각각의 필요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최선을 다하는 섬기는 일꾼이 먼저 되어짐으로 그들의 동역자가 되어야 하는 일이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 우리는 이 칭호를 하나님의 각도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필요로 하는 일꾼이라는 견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추수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일꾼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전파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사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을 주실 때에는 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으로 인내할 수 있는 사람, 곧 하나님의 일꾼을 주십니다. 시대의 도전에 맞서 능히 싸워 이긴 사도들의 불타는 열정과 담대함을 가진 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의 성전이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오염되어 있을 때에 주의 전을 사모하여 삼킴을 당하신 그 하나님의 열심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인 우리는 일을 위한 일(doing the work for the sake of the work)로서의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데(being a person of God) 시간을 먼저 사용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부응하여 하나님 편에서 먼저 취하신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기르시는 하나님의 양의 무리와 함께 양의 우리 속에 들어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한 시간 다루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임을 돌보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은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나 일사 분란한 보고체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 모임을 돌보는 데 필요하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하나님의 사람들 곧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양육을 받은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다루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도덕적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표준을 두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로서 이와 같은 모든 지체들과 함께 그들 각각의 필요를 도와주기 위해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최선을 다해 섬기는 일꾼이 먼저 되어짐으로 그들의 동역자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싶어 하는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 먼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이지 우리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전권을 내어 드림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일도 우리의 일 곧, 우리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의 일꾼들의 일인 것입니다.
나 자신 그리스도인의 표준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위해서 일하며,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들이자 동역자들인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며,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인 일꾼의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곧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수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기쁨처럼 기쁜 일이 없으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특권처럼 큰 특권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었을 때처럼 인생에게 더 큰 만족을 주는 일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영광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대하여 이 세상말로는 능히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이와 같은 기쁨과 특권과 만족을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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