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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지 구원 받는 믿음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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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278회 작성일19-11-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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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는 믿음에는 회개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 한 것이라”(20:20, 21)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때 구원받는 믿음을 가르치는 일과 이에 앞서 회개를 가르치는 일을 하였고 구도자들의 회심과 성도들의 영적 진보나 유익을 위해서는 자신의 입을 결코 다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공적으로 하든, 사적으로 축호(逐戶) 방문을 하든지 간에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지런히 쉬지 않고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정기적인 시간에 모임을 갖는 것보다도 오히려 가능한 모든 기회를 사용해서 성도들 가운데 찾아가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그들의 믿음이 자라고 깊어지는 일을 격려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였고 이 때에도 그는 믿음과 함께 회개를 증거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유대인이라고하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채로 국가적인 편견에 얽매이거나 유대 종교적인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그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아울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설교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요소들입니다. 구원 곧 모든 진정한 회심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 요소, 즉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복음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이 분명한 회개 없이 구원받는 믿음을 갖는 것은 불가능 한 것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불가능 하다고 한 이 말은, 믿음이 분명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에게서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분명하게 일어난 내적 회개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그의 회개의 진정성을 보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인정한 사람을 향하여서도, 식별할만한 분명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인 나 전도자 자신에게 분명하게 확인 되지 않았다고 해서, 회개가 없으니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라는 데 이용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님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회개는 하였는데 그 회개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이 수반되지 못하였다면 그 회개는 아무 소용이 없는 회개이고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근심”(고후7:10)은 회개가 아니라 단순한 후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통, 곤란, 절망, 그리고 마침내 종국에 가서는 사망을 낳게 됩니다. 가롯 유다의 삶에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 된 행위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근심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러한 행위로부터 자신이 받게 될 무서운 형벌 때문에 단지 후회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죄인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에 따른 죄책감을 분명하게 느끼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엎드리고 마는 그리하여 이른바 자신을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믿음을 드러내는 완전한 전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신약성경 본문에서 믿음은 구원의 유일한 조건인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때 회개가 함께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일한 조건 되는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이 죄를 자각케 하시는 사역으로 인해 자신의 끔찍한 상태를 깨닫고, 이 끔찍한 상태에 있는 자신을 정죄 할 때, 비로소 이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소망이 완전히 상실 되어버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이 때 이 사람은 이미 들은 복음을 기억하게 됨으로서 자신의 구세주의 절실한 필요를 깨달아 알고서, 이 구세주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그 끔찍한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고린도후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전에 보냈던 다른 서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 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이거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 다소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두 번 째 편지 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바울은 고린도 후서 이전에 보냈던 그 서신에서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했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전에 그 서신이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위에서 먼저 언급한 세상 근심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범죄 한 후에 죄에 대한 자각이 생기자마자 하나님을 생각하며 생겨나는 근심을 말합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한 심령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죄에 대항하여 단호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자신의 죄를 혐오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며 생겨나는 근심이야말로 회개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 고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였는데,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회개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For godly sorrow worketh repentance to salvation not to be repented of(KJV)”(고후7:10a)라고 말할 때,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반드시 영혼 구원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성도들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기서의 구원은 어떤 형태의 믿는 자들의 죄, 속박,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의 고난으로부터의 건짐곧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구원은 영혼 구원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도 여전히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식으로만 믿음을 고백을 하거나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을 하고 성도라고 여겨진 무리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영혼 구원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말했을 수 있습니다. 딤전 4:1절에서도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에서 보듯이 여기서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은 후일에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 아주 확실한 사실임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믿음에서 떠났거나 타락한 어떤 사람들이란 결코 그들이 구원을 받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입술로만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였었지만 그들은 성도로 인정을 받았고 성도인 것처럼 모임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도 거듭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신약교회에서는 이곳에서 믿음을 고백한 자들에게 이들이 갖고 있는 믿음을 중심 주제로 하는 여러 가지 가르침의 본질과 가르침의 특성의 진위를 철저히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는다는 것이 바로 순교나 핍박받음을 의미하는 초대교회 때에도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한 성도들이 있었다면 순교의 위험이 없고 핍박받을 필요가 거의 없는 오늘 날의 교회에는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한 성도들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고 이들이 교회 안에서 훨씬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고백한 자들이 믿음의 진위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교회에 거짓되고 무익한 신앙고백자들이 들끓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오늘날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신약교회에서도 왜 그처럼 많은 위선적인 신앙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위선적인 신앙이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경건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성경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는 전혀 경건치 못한 사람들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미혹되고 있는 것입니까?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스스로 회개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신앙의 토대가 되는 성경적인 믿음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특히 참된 회개와 거짓된 회개를 올바로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히 구원받는 믿음은 참된 회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들이 잘 가르쳐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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