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지 회심이란 무엇입니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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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815회 작성일19-11-16 20:05본문
회심이란 무엇입니까?
살전1: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For they themselves shew of us what manner of entering in we had unto you, and how ye turned to God from idols to
serve the living and true God;
데살로니가 전서에는 참으로 "참 회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현저하고도 아름다운 회심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독자들과 함께 연구하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부분의 연구에 있어서 우리가 지금 교리적으로 큰 실수만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펴 볼 수 있다면, 이 연구는 즉시 우리 모두에게 흥미 있고 매우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결국 이 글의 제목인 "회심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성경적으로 올바른 해답을 얻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이 주님오심이 가깝고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무지가 활개치고 있는 시대에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의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하나님의 훌륭한 능력으로 회심했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하여 진실로 회심한 모든 심령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회심의 절대적 필요성과 회심의 필요 불가결한 우주적 필요성을 믿는다.’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또는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야만인이든, 스구디아 인이든지, 종이든, 자유인이든지, 개신교인이든, 로마 카톨릭 교인이든지, 다시 말해서 국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는 교회에서의 직분이 무엇이든지 또는 그의 신학적 신조가 무엇이든지 간에 사람은 꼭 회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곧장 직통으로 지옥하고 연결되어 있는 넓고도 영원한 길목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태로부터 기독 신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든지 훌륭한 기독교 교육으로 기독교 신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교육으로 또는 물세례로 또는 어떤 종교적 의식으로 기독 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큰 실수이자 치명적인 실수이며, 엄청난 기만이며, 영혼에 대한 사단의 기만술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존전에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하고 신성한 회심에 의해서 기독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께로 향한 진실 된 회심이 절박하고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이것의 필요를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본다고 한다면 영혼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한 엄청난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 끝없는 영원한 내세가 펼쳐져 있는데도 불멸의 존재인 영혼이 자신의 회심의 엄숙한 문제를 거역한다는 것은 영원한 심판에서 유죄라고 하는 죄책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최대의 우매함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 곧 인생에게 있어서 이 최대로 중요한 이 문제와 비교해서 그 어떤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중요성에 있어서 별로 견줄 만큼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분요하게 사람들의 생각과 에너지를 몰두시키고 빼앗아 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심령의 중요하고도 엄청난 회심의 문제와 비교해 볼 때, 그와 같은 것들은 한낱 저울 위에 묻은 작은 먼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상거래의 투자라든가, 모든 돈 버는 계획이라든가, 이익 되는 투자의 흥미진진한 문제라든가, 모든 쾌락 추구 곧 극장, 음악회, 무도회, 당구, 카드놀이, 주사위 놀이, 경마, 사냥, 음주 등 이름을 댈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러 가지 일들 즉 이런 것들은 마음에 만족이 없는 가련한 사람들이 추구하고 붙잡으려고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이런 것들은 마치 아침 안개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물거품과 같은 것이며, 굴뚝의 연기이며, 가을 낙엽과 같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며, 후에는 고통스런 공허만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에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고, 그 심령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또는 ‘그게 내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을 한다면 사실 이와 같은 반문은 반문 하는 그 자신에게 무시무시한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상거래의 흥분과 정치적 싸움(권력투쟁)과 야망과 돈벌이와 쾌락 추구 끝에는 결국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 곧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 9:27)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죽음의 문제를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끝까지 이 죽음과의 싸움을 피할 길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우주에 있는 모든 재물로도 무자비한 원수 사단의 손에서 한 순간의 휴식도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의학적 기술로도, 모든 애정 어린 친척이나 친구들의 염려와 그들의 모든 눈물과 한숨과 간구로도, 그 무서운 순간을 없앨 수는 결코 없는 것이며, 공포의 왕 사단으로 하여금 그의 무서운 칼을 거두어들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어떤 인간의 기술로도 처리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죽음의 순간은, 인간의 생활의 모든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들에서 마음의 이음줄이 끊겨짐과 동시에 그 자신에게 언젠가는 틀림없이 찾아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즐겁게 지냈던 사랑하는 친구들과 매혹적인 일들과 모든 탐욕의 대상물들은 그 때에는 결국 포기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천 개가 있다 할지라도 이 충격의 순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죽음은 대면하여 똑바로 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무섭고 두려운 신비이며, 엄청난 사실이며, 확실한 실제인 것입니다. 이 죽음은 하늘 아래 모든 회심하지 못한 남녀와 아이들 앞에 예외 없이 우뚝 버티고 서 있습니다.
죽음이란 년, 월, 일, 시, 즉 시간의 문제인데 그 시간 속에 있는 헛되고 공허한 그림자 같은 것들을 굉장한 실재를 갖고 있는 영원으로부터 분리 된 분계선을 통과하여 다시 영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 그렇다 치자 그래서 그게 내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에서 해답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하여는 성경 외에는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헛된 사상으로 이 질문에 대하여 선뜻 대답하려고 시도합니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상을 주입시키려 노력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그리고 내일 죽자!" 라고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황된 자만심입니까! 그것은 자기기만의 헛된 속임수 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신에 의해서 가려진 인간의 바보 같은 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불멸의 영혼이 소멸될 수 있단 말입니까? 에덴동산에서 부터 인간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 영혼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절대로 소멸되는 영혼이 아닙니다. 영혼은 틀림없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회심을 한 사람이든, 또는 회심을 하지 않은 사람이든 영혼은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 모든 사려 깊은 심령에게 말해주고 있는 이 말은 이 얼마나 무거운 생각입니까! 어느 누구도 이 광대한 사상을 습득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광대한 사상도 결코 우리의 믿음을 초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말씀에 있는 단 한 구절이 만개의 인간 마음의 주장과 이론을 쓸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죽음은 진정 소멸인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는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오직 자신의 죄 속에서 죽는 사람과 불신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인 것입니다. 기독교 성도인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지옥 형벌의 심판이 영원히 지나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으면 그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죽음 이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심판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하여 엄숙하고도 확실하게 그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 20:11-15)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표현하는 한 확실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한 점의 이의나 거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에게는 전혀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또는 ‘우리 모두는 죽으면 끝이 아니냐?’ 라고 여러분은 아직도 반문하고 싶습니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오히려 불 못 속에서 영원히, 그 곳에 영원히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그리고 두려운 말씀입니까!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든 간에 자기 앞에 죽음과 심판과 불 못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매순간의 맥박 소리는 점점 더 그 어둡고 두려운 곳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머지않아 결국 영원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는 사실은 내일 아침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고, 그가 회심하지 않았다면, 또한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심판의 모습은 불 못으로 나타날 것이요, 그것은 끝없이 영원한 것이 될 것입니다.
독자들께서는 이런 무서운 주제로 우리가 이렇게 오래 동안 상고하는 것에 대해 아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 따위 위협하는 말이 사람들을 회심케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고, 회심하지 않은 그 사람은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 일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그 따위 말이’라고 하는 이런 말이 사람들을 회심시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 말이 최소한 회심의 필요성은 알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그들에게 다가 올 절박한 위험은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에게 다가 올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도록 하라고 하는 권면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축복 받은 사도는 벨릭스와 함께 "다가 올 심판"에 대해서 언쟁을 하였습니까?(행 24장) 그것은 틀림없이 벨릭스로 하여금 그의 악한 길과 생활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설득한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은 왜 청중들에게 영원한 곳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강조를 하였습니까? 왜 주님은 자주자주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을 말했습니까?(막 9:48) 그것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위험을 알게 할 목적으로 하셨을 것이고 그러하므로 그들이 그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고 도망하여 그들 앞에 제시된 소망을 붙잡고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주님보다 더 현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더 사려 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보다 더 현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보다 더 사려 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회심시키기 위해서 이 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비교하여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존재라면, 주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강조했던 주제와 동일한 것을, 우리가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하면, 이 일이 진정 염려할 만한 일이 되겠습니까! 누구든지 회심하지 않으면 크고 흰 보좌 앞에 불가피하게 서게 되며,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는 확실한 말씀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교묘히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위축되어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는 바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회심하지 못한 독자 여러분들에게 엄숙히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요한 영혼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무엇이라도 이것 곧 회심에 대해서 독자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거역하도록 할 수 있게 방치하거나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걱정거리나 즐거움이나, 어떤 직업이라 하드라도 그 것들 때문에 이와 같이 중요한 문제의 심각성을 독자 여러분으로 하여금 돌이켜 보지 못 하도록 해서는 결코 안 되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얻고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그것이 그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아니면 "사람이 자기 목숨과 바꿀 것이 무엇이겠는가?" (마 16:26)
오, 만일 당신께서 구원받지 못하고 회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대에게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하기를 원합니다. 이 문제를 먼저 심사숙고하고 그리고 구원받고 하나님께로 회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왕궁으로 우리 주님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최소한 이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고 알 수 있게 되기를 믿고 싶습니다. 그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그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질 수 없습니다.(마 24:35) 땅과 지옥의 모든 권세와 인간과 악마라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헛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 앞에 있는 두 길 중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지금 회심하든지 아니면 이후로 영원히 멸망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고 있는 자이고, 지금까지 연구하고 살펴본 이러한 견해에 대해 확신을 갖고 그기까지 도달해 있는 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회심하지 못한 자들에게 말로나 글로나 지금 이 순간 다가오는 진노에서 벗어나 축복의 구세주에게로 도피해야 한다는 절박하고 절대적인 필요성을 열과 성의를 다해서 열렬히 강조한다면 그것이 그래도 지나친 일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오는 자들을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크게 기뻐하며 환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사랑스럽게 은혜의 말씀으로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않으리라"(요 6:37b)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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