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 복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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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288회 작성일19-11-16 20:20본문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은 시편(詩篇) 5권 150편 전체의 얼굴에 해당 합니다.동시에 성경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행복한 인생길, 복 있는 인생길 곧 행복한 삶에 관한 가장 탁월한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이 시가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알려 주고자하는 복 있는 인생길이란 한마디로 ‘전심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1편은 흔히 생각하듯이 율법의 묵상만을 강조 하는 종교적 명상이나 경건한 종류의 침묵을 강조하고 있는 묵상만을 위한 묵상이나 명상만을 위한 명상을 강조하는 시는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라’는 말을 마치 엄숙하고 경건한 종류의 어떠한 기도행위 같은 것을 모범적 신앙행위로 보고 이와 같은 것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는 나무’는 쉽게 생각하듯이 인간의 행위와 공적을 추구하는 율법 주의적 보상행위나 종교행위를 왕성하게 하고 있는 상태를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내주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거룩한 열매를 풍성하게 열리게 함으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을 누리는 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하나님의 뜻(율법)을 결코 지키지 못하여서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는 류(類)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의 표준이 율법이 요구하는 삶의 표준을 넉넉히 능가함으로써 그 율법에 대하여 변함없이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임을 말 하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15:5)라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포도나무의 가지’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가지인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신약성경의 많은 아름다운 칭호들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그 풍성한 수액과 양분, 그리고 원기와 생기의 원천이시며 그 유일한 공급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뜻’에 절대 의뢰하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나무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를 포함한 나무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할 때 이 나무는 잎사귀가 마르거나 시들지 않게 하는 생명을 곧 영원한 생명을 공급받아 소유하고 누리는 복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율법이란 ‘행하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는’(갈3:10) 두렵고 진저리나는 집과 같은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시1:2)함으로 풍성한 교제 와 거룩한 열매를 맺는 삶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홈 스위트 홈과 같은 집이며 생명과 축복의 통로가 되는 집이라는 말이며 그래서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순결한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은 마음이 이미 깨끗하고 의롭게 된 사람이며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이미 자신의 선택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로서의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체험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와 자녀’(이 말은 하나님이 이제 나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말입니다.)로서의 친밀한 교제가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이 복된 신분과 이 복된 순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그래서 보좌 우편에 영광 가운데 앉아 계신 놀라우신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도마 같은 우리는 이때에도 주님의 못 자국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 못 자국을 직접 확인합니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머리를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처럼 우리주님의 한없이 부드러운 가슴에 파 묻어버립니다.
바로 이때 안심하고 안도하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의 모든 아픔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환란이나 핍박이나 곤고가 나에게 재앙이 되지 않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의 억울함이 나를 마음 아프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분한 마음과 원망과 원한을 갖지 않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슬픔 따위가 나를 눈물 흘리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육신의 질병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도록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내가 두려워 할 것은 없게 만듭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내가 부러워 할 것도 없게 만듭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나를 시기 나게 하는 것이 없도록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권력이 나를 유혹하지 못하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부가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명예가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정욕과 유혹에 대면하였을지라도 단호하게 거부하며 결코 머뭇거리지 않게 합니다. 한 없이 넓은 주님의 품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이 온전한 평안을 누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도록 합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이 주님에게 속삭일 때 주님께서 미소 지으시며 한 없이 자비로운 음성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형제여! 너의 구하는 모든 것이 영원히 허락되었고 영원히 보장되어 있단다.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라! 그러나 지금은 사단이 세상임금이란다. 이미 내가 십자가위에서 사단을 이기고 심판하였으며 판결문을 낭독하고 공표하였단다. 그러나 아버지의 세상에 대한 경륜과 계획하심 속에 이 사단의 무저갱 감옥행과 불 못으로 가는 사형 집행은 이후에 아버지께서 정하신단다. 그 때와 기한은 오직 아버지께서만 아신단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우리가 사단의 지배아래 있을 지라도 우리 믿는 자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기셨으므로 이미 이긴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긴 자로서 세상에 대하여 우리는 증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증거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 가운데 우리들이 계속 머물러 있는 한은 우리들이 이 증거를 계속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 가운데 계속해서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품에 있을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교제해주신 모든 말들이 기억나고 그 모든 신령한 축복이 기억남으로 우리에게 거룩한 열매가 매일 맺히게 되면, 우리 주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영광을 사단은 감히 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시편 기자와 동일하게 감격하여 말하기를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저들 사단을 향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향해 크게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악인이 이 여호와의 영광중에 있는 우리를 그래도 범하고 우리의 축복을 넘보고 훼방하고자 한다면 아! 초개같은 이들은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이란 말인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래서 악인은 여호와의 영광 가운데 있는 우리 회중들을 결코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므로 악한 자는 감히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는 것입니다.(요일5:18) 악인들이 여호와의 영광의 불 근처에라도 오게 되면 그들은 흔적도 없이 타버릴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들이 이 사실을 모른단 말입니까? 저들은 그렇게 어리석고 또 그렇게 교만한 자들 입니까? 그들은 그렇게나 무모할 정도로 자고하여 높아 있는 자들이란 말입니까?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이 놀라운 우리 주님의 위로 와 축복을 경험한 우리는 이제 악인의 꾀가 제아무리 강력한 부귀와 권력과 탐욕의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꼬인다 해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죄 유혹이 아무리 클지라도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가 아무리 빛나고 탐스러울 지라도 복 있는 사람은 결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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