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나눔터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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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849회 작성일19-11-16 16:51본문
작성자: 최복숙
성경은 엘리사벳이 그 자녀를 교육한 내용이나 그 방법을 직접적으로는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 남편과 더불어 자녀 교육을 철저히 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1)이 두 사람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1:6)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들이 신명기 6장의 자녀 교육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즉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8:1~9참조)라고 한 말씀을 분명히 순종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엘리사벳이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한 여자이기에 잠언 22:6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그 보배로운 교훈에 분명히 주의하여 순종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2) 세례 요한의 믿음과 행실과 가르침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어떤 내용의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엘리사벳이 그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하는 교육의 내용보다 먼저 어떻게 가르쳤는가 하는 교육의 방법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교육의 방법이 교육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즉 세례 요한이 “주 앞에 큰 자”(눅1:15)가 된 것은 첫째는 그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의인”(눅1:6)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눅1:6) 행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 엘리사벳의 교육이 실효를 거둔 것은 그가 삶과 행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은 두려워할 분이심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그 어머니가 입술을 통해 증거 하는 하나님과 그 계명과 규례를 통해서보다 그 어머니의 믿음의 인격과 삶의 자세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고, 또 그 계명의 경외(敬畏)tm러움을 배우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녀의 교육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어머니들의 교육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것은 그 어머니의 방황하는 믿음과 일관성 없는 행실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의 믿음이 방황하게 되며 행실이 일관성이 없게 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우리가 미련하기 때문이라 증거(證據)합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 함과 같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증거(證據)합니다. 즉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고 함과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미련한 것이고 무엇이 어리석다는 것입니까? 미련한 것은 우리가 성경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거나 더디게 믿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黙想)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것은 우리가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을 모르고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임의로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 12:15)는 주님의 교훈에 유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된 분들은 자신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믿음과 행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은 두려워할 자이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들은 그 부모들의 입술을 통한 교훈도 존중히 여겨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 엘리사벳이 그 아들 요한에게 무엇을 가르쳤겠습니까? 엘리사벳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한 것을 보면 그녀가 그렇게 중요시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그대로 요한에게 가르쳐 지키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르침을 좀 더 구체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다만 그녀의 교육의 대상이 하나님의 특수한 소명을 받은 “주 앞에 큰 자”(눅1:15)인 세례 요한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 교육의 내용을 일반화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자녀 교육에 적용할 부분이 많이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1. 요한의 출생과 하나님의 능력
엘리사벳은 그 아들 요한에게 그의 출생하게 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증거(證據)해 주었을 것입니다. 즉 엘리사벳은 자신의 늙어 임신이 불가능한 시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아들 요한이 잉태되어 출생하게 된 경위를 분명히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 그녀를 돌아보신 하나님의 자비, 또는 그녀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등 여러 가지 면을 가르쳐주었을 것입니다. (눅 1:13,36,37,24,25,58). 마찬가지로 어머니들이 그 자녀들의 출생을 소재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2. 요한의 생애와 하나님의 소명
엘리사벳은 그 아들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대한 뜻을 계시하신 사실과 그 내용을 분명히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즉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눅 1:15~17)는 말씀으로 그의 삶의 과제와 사명이 무엇인지를 매우 엄숙하게 이야기 해 주며, 또 그가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 즉 나실인이 되어 그 규례대로 살아야 마땅할 것 (민수기 6장)과, 또 백성을 어떠한 말로 깨우쳐 회개시켜야 될 것 (눅 3:11~14), 등을 간곡히 교훈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들이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 하신 목적이며, 그들의 죄성과 그 값이며, 회개의 당위성과 필요성이며, 또 예수님을 구주로 맞이하여야 할 것과 그렇게 할 때에만 그들의 삶이 복되고 안전하게 된다는 사실, 등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강림, 그 인격과 능력
엘리사벳은 그 아들 요한에게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사실과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그분의 높으심과 능력, 그분의 희생제물이 되실 것과 심판 등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눅 1:43, 눅 3:16,17 요 1:29~34). 마찬가지로 어머니들이 그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분과 인격, 교훈,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등 제반 사실을 상세히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과 요한의 심령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눅 1:80). 엘리사벳은 어머니의 자상한 마음으로 그 아들 요한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눅 24:44)을 읽어주며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과 아무도 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감화를 받게 되어 그의 심령이 담대해 지고 강하여짐으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눅 1:80)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할 때까지”(눅 3:2) 인내로서 빈들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빈 들”의 고독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눅 1:80). 이와 같이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해설해 줄 때 그들의 심령도 강하여져서 세상과의 타협보다는 분리를, 형식적이고 세속화된 기존 종교 체제 속에서 안주하기 보다는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쫓으라.”(딤후 2:22)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빈 들”에 머물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5. 검소한 삶과 세례 요한
엘리사벳은 그 아들 요한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꾸밈이 없이 검소한 삶을 살므로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에서 택함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종인 것을 드러내야 된다고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마 3:4)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그들의 의식주를 위해 이세상의 풍조와 유행을 쫓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구별된 생활을 하며“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딤전 6:8)가 되라고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6. 겸손과 세례 요한
엘리사벳은 그 아들 요한에게 겸손의 지당성과 중요성을 분명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요한이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눅 3:16)고 한 말씀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한 말씀이 그것을 증거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분이심을 엘리사벳이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되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무릇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는 말씀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는 말씀과 또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들은 범사에 자녀들에게 겸손할 것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7. 세례 요한의 영의 분별
엘리사벳은 그 아들 요한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고 분명히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마 3:6,7)하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누가 독사의 자식들이고 누가 하나님의 자녀들인지를 확실히 분별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어머니들도 자녀들에게 영의 분별력을 길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때가 악해져서 사람들의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사 4:20)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독교계 안에는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고후 11:4)과 “다른 교훈”(딤전 1:3, 딤전 6:3)이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고통 하는 때”(딤후 3:1) 즉 영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때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그러한 암흑한 때에 그 세대에 물들지 아니하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한 것처럼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딤전 4:7) 한다면,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딤전 6:3) 착념한다면 그들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삼분지 이를 달성한 것이 된다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좋은 나무” 어머니가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자녀 교육이 충분한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부지런히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을 간곡하게 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또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딤전 6:4)고 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그때의 엘리사벳과 같이 삶과 행실을 통해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고 또 힘써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한다면 그들은 세례 요한처럼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대신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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