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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성경공부 제10과 은혜로 받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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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622회 작성일19-11-1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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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은혜로 받는 구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이 말은 곧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합니다. 이는 값을 주고 사거나 율법을 지키는 등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율법이나 율법이 말하고 있는 종교적인 의식을 잘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종교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때로 그들은 부분적으로 또는 어떤 면에서 구원은 은혜로 받는 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하나 사실은 이 진리를 부인합니다. 구약에서의 은혜의 의미는 "열등한 자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다"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 다는 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행하신 일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신약에서 은혜의 의미는 "호의, 너그러움, 어떤 사람에 대한 친절 또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원은 부분적으로나마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으로 얻거나 값을 쳐주고 사거나 열심히 일(선행)을 해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수여자에게 아무런 값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은혜에 대한 그릇된 사상

 

사람의 사고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무언가 우리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다음의 말들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기바랍니다.

 

1.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 섬기는 일이나 선행을 해야 한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11:6),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3:5). 은혜롭게도 하나님의 의가 "일을 아니한 자"(4:5)에게 주어졌습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일을 구하는 자입니다(4:4).

 

2.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5:4). 대조적인 말씀이 요한복음 1:17에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특권으로서 구원에 관하여는 자랑할 만한 근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3:27). 하나님과 함께 하는 특권은 무슨 법으로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특권으로서 우리의 구원에는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적인 행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은 어떤 것을 포기하거나 하나님과 흥정해서 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우리가 일조해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도, 선행을 많이 해서도, 종교적인 단체나 행사에 참여해서도 또는 하나님을 우리의 빚쟁이로 만들어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받으며 은혜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왜 은혜가 필요한가?

(우리 인간은 결코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사람들의 도덕적인 상태 때문에

 

사람은 도덕적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5:6). 사람은 죄인이며(3:9), 하나님의 원수이고(1:21), 죄 가운데 죽은 자입니다(2:1). 그런데 그러한 그가 어떻게 그 스스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겠는가?

 

2.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 때문에

 

사람은 그 자신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사람이 최고로 선하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의 끝에도 이르지 못합니다(6:3~5). 하나님이 그 은혜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필요한 것인가?

 

우선 로마서 56절로 11절을 보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에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필요한 세 가지 이유가 나타나 있다.

 

첫 번째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경건의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인 율법을 만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겐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필요하다.

 

두 번째, 우리가 죄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 아래 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의 기준에 이를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시고, 영원히 속죄를 해주시는 길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에겐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필요하다.

 

세 번째, 우리가 원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관계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물며 원수된 우리에겐 얼마나 더 무서운 진노를 내리시겠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 때문에 우리는 바로 멸망에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히 하나님과 화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선 화목제물이 필요하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주신다. 따라서 우리에겐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대속의 의미를 살펴보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여기서 대속물이란 속전을 가리킨다. 이 말은 노예를 매매하거나 해방시켜 주는 일에 대해 고대 세계에서 사용되던 기술적인 용어이다. 즉 대속이란 속전을 지불함으로써 해방시키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는 연약한 상태에서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죄인된 상태에서 율법의 저주 아래 신음하고 있고,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 언제 무서운 심판의 날이 이를지 모르는 두려움 가운데 있다.

 

이처럼 우리는 죄의 포로된 상태에 있기에 우리를 자유케 하려면 오직 속전이 지불되어야 하는데 그 속전은 다름 아니라 메시아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우리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죄의 삯을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 갚으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대속을 위한 것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10:1-18)

 

사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황소나 양 또는 염소를 제사로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았다(4:20,26,31,35).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죄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이 그 죄들을 보시지 않도록 피로 덮어논(covered) 것 뿐이었다(4:7 참조). 왜냐하면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없앨 수가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구원을 받으려면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우리의 믿음을 따라 성령님은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신다. 이처럼 복된 예수님의 대속사역은 구원을 바라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은혜의 효력은 무엇인가?

 

(구원받기 전부터 구원 받은 이후의 우리의 구원이 영원히 안전하며 계속해서 이 은혜에 서있으면서 우리 삶의 모든 소원과 행함과 성취가 모두 하나에서 열가지 모두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1. 은혜로 구원받습니다(3:24, 4:16).

인간이 첨가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에 대해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우리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18-25)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있으며, 또 이것을 약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믿는 믿음에 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 구원하시는 은혜는 오직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임한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하신다.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13)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

골로새 사람들도 이러한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을 귀하게 보신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1:5)

 

그러므로 우리는 오 하나님, 저를 은혜로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구원을 제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습니다.”와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 구원얻는 믿음의 기도란 감사의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감사를 통해서만 천국 문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궁정에 이르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100: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행하신 십자가 사역에 근거해서, 회개의 기도와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회개의 기도와 믿음의 기도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이다.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또는 어떤 것이 먼저라고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회개와 믿음을 겸한 기도이다.

 

2. 은혜로 보호받습니다(10:28~29, 벧전 1:5, 5:10).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그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우리는 율법이나(3:2~3) 다른 어떤 선행으로 보호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6:14)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3. 우리는 은혜 가운데 서 있습니다(5:2, 벧전 5:12).

하나님은 그의 원리에 따라 우리를 다루십니다.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4. 우리는 은혜로 삽니다(13:21, 2:13).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속에 (행하시고, 일하시고)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0절에서 시작된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모든 선한 일에 온전케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신비롭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한 것으로 우리를 구비시켜 주시며, 자기 앞에 즐거운 것을 우리 안에 이루어 주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일을 하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합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행할 능력까지 주시며, 우리는 그 일을 행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인정하는 고백으로 끝맺습니다.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만민의 칭송의 대상이 되시도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은 하늘 찬미의 쇠하지 않는

영원한 제목이 되시기에 합당하시니이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은혜에 대한 경고

 

은혜란 죄를 짓도록 허용하거나 경건하게 살아야 할 우리의 소명을 짓밟도록 허용하는 허가증이 아닙니다.

1. 우리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6:1).

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지 않습니다(4).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희생을 위한 것입니다(5:13).

3.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받았습니다(*2:10, 3:8).

우리는 계속해서 죄 가운데 거하지 않습니다(요일 3:9).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지킵니다(요일 2:3~5).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구원의 열매이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14:15,21).

유일한 그리스도인의 멧세지는 은혜의 복음입니다(14:3, 20:24,32). 이 복음이 은혜의 보좌에서 우리를 영접하시는(4:16) 모든 은혜의 하나님으로부터 퍼지게 되었습니다(벧전 5:10).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의 원리요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께 어떤 의무를 지우는 그릇된 생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의 결과는 우리가 그분의 만드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전의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그저 하나님의 솜씨에 놀랄 뿐입니다. 정말 이 작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하고 있음 같이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피조물을 만든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하여라는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통하여 구원받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받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선한 일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지 않지만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고보서 2:1426에서 강조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할 때 이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 믿음행함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위가 우리의 믿음의 실체를 증명합니다. 바울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함으로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구원선한 일보상.

 

믿음은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구원은 선행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대해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은 내게 어떤 선한 일을 기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각 사람들의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생에 대한 영적 계획을 세워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의 뜻을 알아 이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할 필요가 없고 오직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계획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초조함과 격분에서 구원하며 우리의 삶이 주님께는 영광과 사람들에게는 축복,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는 큰 상이 주어질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 각자의 삶을 계획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1)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즉시 이를 자백하고 버려야 합니다.

(2) 지속적으로,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3)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순

종하기 위하여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4) 매일 기도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5) 봉사의 기회를 찾아 봉사해야 합니다.

(6)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제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선한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선한 일들을 했을 때 이에 대해 보상을 하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2:10)에서, 만드신 바(포이에마)는 동사 만들다(포이에오)에서 유래된 명사로 만들어진 것, 작품, 피조물의 뜻을 가집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대해서는 육적인 창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 육적, 영적 창조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영적인 중생, 곧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죄인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을 볼 때 의 의견이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헬 라어 원문에서는 "그의"(아우투)라는 말이 본절의 맨 앞자리에 위치하여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계속해서 죄인의 구원 사건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말에서 "지으심을 받은" (크티스덴테스)은 창조하다(크티조)의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로 창조되다 의 뜻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세 때의 하나님의 창조 사역 을 가리키는데 쓰이기 도 했지 만(3:9 1:16, 여기에서는 포이에마(만드신바)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이며 영적인 회복, 즉 중생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15절 엡4:24). 이는 본절의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을 보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창조(고후 5 : 17)를 같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창조와 구속의 밀접한 관계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본래의 창조를 배경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는데,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피조계 속에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 죄로 인해 왜곡되어진 상태를 다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기뻐하시는 뜻대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구속 곧 재창조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1:31) 처음 창조 받은 피조계의 선한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다시 창조한 것이 구속인 것입니다(벧후3:12,13). 한편 여기서 선한 일을 위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재창조하신 목적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의 선한 일은 허물과 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허물과 죄로 행하기 이전의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일 때에 하나님의 창조 속에 계획 되어지고 의도되어진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창조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선한 일 가운데로 행하기 위해 구속, 즉 재창조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의해, 죄와 죽음에서 의와 영생으로 부활하는 인간의 구속도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습 및 연구과제

은혜로 받는 구원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은혜로 구원받는 진리를 강조함에 있어 아주 유일하다.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이 진리를 부분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다음의 질문들에 답함으로 이 교리를 분명히 이해하도록 하자.

 

1. 십계명에 대한 관찰 (옳은 것 하나를 택하라)

1)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2) 십자가의 대속과 십계명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

3) 지금은 완전히 무효하다.

4)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기 위해 요구된 완전한 기준이다.

5) 위에 언급한 것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2.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하라. 하나님의 은혜는?

1) 얻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호의

2) 얻을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호의

3) 심판을 받을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호의

 

3.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를 택하라)

1) 기본적으로 선하다.

2)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3) 기본적으로 부패했다.

4) 기본적으로 잘하나 약하다.

 

4. 하나님은 거룩하시면서도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이는? (하나를 택하라)

1)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자리를 대신 취하시고 죄인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2) 비록 모순된다 해도 하나님이시니 마음대로 하실 수 있기 때문에

3) 죄란 그리 심각한 게 아니기 때문에

4) 그것이 바로 그분의 피조물들에 대한 그분의 의무이기 때문에

 

5. 에베소서 28,9절을 당신 자신의 말로 다시 써보라.

 

6. 아래 성구에서 서로 반대되는 것을 두 가지씩 적으라.

1) 베드로전서 5:5

 

2) 유다서 4

 

3) 갈라디아서 5:4

 

4) 로마서 11:6

 

5) 로마서 4:4

 

7. 다음의 말씀 중에서 어느 것이 은혜를 나타내주고 있는가?

1)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2) 네 하나님 주 여호와를 사랑하라.

3) 우리가 그를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4) 범죄한 영혼은 정녕 죽으리라.

 

8. 유다서 4절과 베드로전서 216절에서 은혜에 대한 어떤 그릇된 사고가 바로 잡혔는가?

 

9.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당신의 표현으로 설명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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